Art Work

나는 작품에서 현실을 재구성한다. 현실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사건의 연속이지만 이를 작품으로 재구성함으로써 좀 더 객관적인 자세를 유지할 수 있다. 이러한 자세는 현실에 대한 통찰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작업을 이어가는 데에는 현실에 대한 불안함에 깊게 깔려 있다. 현실의 괴로움은 환상적인 이상 에서 비롯된다. 없는 것에 대한 갈구는 순수한 본성이며 끝없이 채우고자 하는 욕망과 연결된다. 현실에서 겪는 지속적인 불완전성은 나를 불안하게 하며 그것 의 정체를 파악하고 알아가기 위해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이 같은 삶의 태도는 그림에서 다양한 사물들과 종이의 구겨짐으로 나타난다. 종이는 원초적 상태의 나이다. 종이에 그림을 그리는 것을 환상의 실현이라 여기었던 어린 시절부터 종이는 욕망을 풀어내는 공간이었다. 이것이 작업에 들어 오며 원초적인 욕망을 지닌 내가 되었다. 종이 속 드로잉은 환상적이거나 이상향적 형체가 등장하지 않는다. 이러한 종이 위에 그려진 유아적이고 직관적인 드 로잉 혹은 이미지 자체가 환상과 욕망이 일치하는 이상적인 세계의 경험이다. 종이가 자유와 환상이라면 캔버스는 현실을 자각하는 과정이다. 종이가 ‘어린 나’라면 캔버스는 ‘어른의 나’이다. 종이가 환상과의 만남이라면 캔버스는 환상의 객관화이다. 나에게 종이는 순수와 대면할 수 있는 매개체이며 원초적인 환상의 공간이다. 종이의 ‘구겨짐’은 환상의 가벼움을 말함과 동시에 현실의 자아를 설명하기 위한 액션의 결과이다. 그리고 내가 만들어낸 환상은 종이 위의 그림일 뿐임을 일깨우는 객관화의 과정이다. 이같이'구겨짐'은 더 이상 환상의 세계 에 의지하지 않고 불확실한 세계(현실)로 나아가려는 자아이다. 이러한 자아는 불안하지만 현실을 인지하고자 하는 의지를 지닌다.